2021년 4월 4일 일요일

외래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상황 2

5. 코드를 바꿔달라고 하는데요.

한 줄 답변: 코드는 전적으로 선생님 소신대로 내면 됩니다. 물론 나름대로의 근거는 필요하고 원칙은 따라야 합니다. 일관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코드는 일견 무척 단순한 작업일 것 같지만 사실은 애매한 경우가 많습니다.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자연 현상은 아나로그인데 코드는 디지털로 작성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90이상이면 A, 80점 이상이면 B라고 한다면 89.99면 어떻게 될까요? 한 사람은 90.01로 평가하고 다른 사람은 89.99로 평가하였다면, 사실 매우 비슷한 평가결과입니다. 그러나 코드는 A와 B로 크게 달라집니다. 사실 A가 정확한 것인지 B가 정확한 것인지 아무도 정해줄 수 없는 것도 많습니다.

(2)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 것인지에 따라 코드체계의 엄밀성이 달라집니다. 현행 코드체계는 공공적인 목적으로 대략적인 질병통계를 목적으로 하는 비교적 단순한 분류입니다. 겹치는 부분도 많고 빠진 부분도 많습니다. 개개인에게 엄밀하게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현행 코드체계의 근본적인 한계점입니다.

(3) 의학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의료진간의 견해차도 큽니다. 과거에 암이 아닌 것으로 분류하다가 최근 암으로 분류되는 것도 있습니다. 물론 그 반대도 많습니다. 같은 상황을 가지고 한 국가에서는 암이라고 부르고 다른 국가에서는 아니라고 부르는 예도 있습니다. 한 국가에서도 의료진에 따라 견해차가 큰 상황도 많습니다. 특히 치료전과 치료 후의 결과가 다를 때에는 어떻게 코딩할 것인지는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의료진의 견해차가 매우 큰 영역입니다. 따라서 저희는 최대한 객관적인 사실(objective fact)에 근거하여 일관성있게 coding하고 있습니다.


[짧은 코딩 가이드]

Personal proposal for code of gastric neoplastic lesions (version 2015-12-5)
DiagnosisCode
Gastric adenoma, low grade dysplasiaD13.1
Gastric adenoma, high grade dysplasiaD13.1
Gastric carcinoma in situ이 용어 사용하지 맙시다.
Gastric intraepithelial carcinoma이 용어 사용하지 맙시다
Gastric carcinoma, lamina propriaC16
Gastric carcinoma, muscularis mucosaC16
Gastric carcinoma, submucosal invasionC16

* 참고: EndoTODAY 코드


 6. 'Suggestive of cancer'는 암인가요, 아닌가요? - 용의자는 용의자고 범인은 범인입니다. 암의심은 암의심이고 암은 암입니다.

한 줄 답변: 병리결과의 suggestive나 suspicious는 일단 암이 아닙니다. 암 의심일 뿐이지요. 다만 내시경, CT 등 다른 검사에서 암으로 판단되면 추후 진단이 바뀔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암으로 코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연현상은 analog인데 진단과 그에 따른 코드는 digital일 수 밖에 없습니다 (2011년 4월 23일 EndoTODAY).

의사의 진단과 치료법은 아나로그인 자연현상에 대응하면서 발전해왔습니다. 아나로그적인 치료원칙이란 불가능한 일이므로, semi-analog 혹은 semi-digital 성격의 단계적 치료법을 개발해 온 것입니다.

의사는 환자 평가를 기초로 아나로그 그래프에서 적당한 자리를 잡은 후 semi-analog인 단계적 치료법을 적용해 왔습니다. 학문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애매한 영역이 있다는 것은 의학의 근본적인 성격으로 이해되었지요. 애매한 상황에서 최선의 판단을 하는 것이 훌륭한 의사의 德이었습니다. 애매한 것을 애매하다고 인정하고 최선의 대책을 강구하는 것. 이것이 의학의 본질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정부가 그리고 몇 년 후 보험회사가 의사에서 무리한 요구를 해 왔습니다. 암인지 아닌지 밝히라는 것이었습니다. 의사들은 말했습니다. "암은 암입니다. 암이 아닌 것은 암이 아닙니다. 그런데 애매한 것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나 이 답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암인지 아닌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환자에게 금전적 손해가 생길 수 있다는 협박도 따라왔습니다. 이런 낭패가...

암을 치료하는 의사가 암 진단을 붙일 때에는 병리결과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병리결과도 애매한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suggestive of cancer 혹은 suspicious of cancer입니다. 암이라는 말입니까? 아니라는 말입니까? 이와 관련된 혼선은 끝이 없습니다.

암인지 아닌지의 구분은 생각만큼 명확하지 않습니다. 암의 진단은 디지털이 아니라 아나로그, 즉 일종의 스펙트럼으로 보면 좋습니다. 한쪽 끝은 누가 봐도 명확한 암이 있고 다른 쪽 끝은 누가 봐도 절대 암이 아닌 상황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간 영역도 제법 넓습니다. 의사들은 흔히 grey zone(회색지대)이라고 부릅니다. 이 영역에서는 의사들간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학문적으로 명확히 정립되어 있지 않고, 법적으로도 뚜렷하게 규정해 놓은 곳이 없습니다. 치료 전후 암진단 여부가 변경되었을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환자들이 "병원마다, 의사마다 의견이 다른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라고 질문하는 영역입니다. 무척 답답한 심정이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명확하지 않은 것은 명확하지 않다고 말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병리검사결과에 suggestive라는 표현으로 기술된 경우는 "강력히 의심되지만 확진은 아니다"고 보는 의사도 있고 "암이다"고 보는 의사도 있습니다. 즉 suggestive라는 형용사의 암여부에 대한 규정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병원별, 의사별 관례에 따라 치료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과거에는 아주 쉬었습니다. 설혹 두 의료기관의 질병상태평가(암인지 아닌지)가 다르더라도 암 강력 의심이나 암은 거의 비슷한 방법으로 치료하기 때문에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여 치료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질병 code에 따라 의료급여를 다르게 책정하는 정책을 도입하였습니다. 같은 검사, 같은 치료를 받아도 암인 경우와 암이 아닌 경우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로 인한 혼선이 적지 않습니다. 게다가 사적으로 가입한 암보험, 건강보험 등의 지급여부와 지급금액도 질병 code에 따라 달라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회사나 기타 직장에서도 질병 code에 따라 행정업무처리 절차와 내용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요컨데 회색지대에 속한 상황으로 나오면 의료(치료)적 측면은 큰 차이가 없는데, 의료외적인 사회적인 측면 (의료보험, 암보험, 회사생활)에는 차이가 큽니다. 어짜피 명확하지 않은 부분에서는 진료의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나름의 관례에 따른 진단 및 치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한병리학회에서 2008년 발표한 "병리의사를 위한 소화기계 암등록에 대한 제안 (I)"에서는 suggest를 암으로 등록하는 것으로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한 학회의 의견일 뿐이지 의료계 전체의 의견이나 돈줄을 쥐고 있는 정부에서 동의한 것은 아닙니다.

병리결과의 suggestive나 suspicious는 일단 암이 아닙니다. 다만 내시경, CT 등 다른 검사에서 암으로 판단되면 추후 진단이 바뀔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암으로 코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하튼 일관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7. 대장내시경에서 용종을 조직검사로 제거했는데 '용종절제술'로 바꿔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한 줄 답변: 제거는 제거고 절제는 절제입니다. 제거를 절제로 바꿀 수 없습니다.


[2014-11-20. 애독자 질문]

대장내시경에서 0.4cm 작은 용종을 조직검사로 간단히 제거하였습니다. 진단서를 "대장내시경에서 대장 용종 한개 발견되었고 조직검사 포셉으로 조직검사하면서 용종을 제거하였음"으로 써 드렸습니다. 며칠 후 "제거"를 "절제"로 변경 가능한지 문의가 들어왔습니다. 제거한 것도 일종의 절제(?)이므로 제거를 절제로 변경하면 절대 안되는 것도 아닌 듯 합니다. 이 사례는 분명 "용종절제술"이라는 보험 혜택을 위해서 써달라는 것이므로 안된다고 할 예정입니다.

최근에는 이런 식으로 진단서 단어를 바꿔달라는 일이 많아 당황스럽고 자존심이 상합니다. 선생님은 보통 이런 애매한 경우에 원칙대로 하실 듯 하지만...단어 변경은 안 해주는 게 맞겠죠? 일반 로컬은 참 이런 일이 많네요 ㅠㅠ

[2021-1-1. 애독자 질문] (앞 질문과 유사한 내용입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Endotoday 애독자입니다 (소화기내과 의사). 3년 정도 나와서 내시경을 하고 있는데, 시술 확인서와 같은 서류 작성에 있어서 의견이 다양한 선생님들을 다수 접하고 있습니다.

크기가 2mm 정도의 IIa 타입의 용종은 조직검사 겸자를 통해 용종을 제거하는데 보험 회사 제출 서류로 '용종제거'라는 문구를 넣어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용종절제술은 EMR, CPP와 같이 Snare를 이용한 경우에만 적어주고 있고 겸자로 제거한 경우에는 "조직검사 겸자를 통한 용종제거(술)" 이라고 적어주는 경우가 많은데 의견이 다른 선생님들도 주변에 있어서 ( '겸자를 통한 조직검사' 로만 적어주시더라구요.)

교수님의 의견이나 혹시 적어줘야 되는 다른 근거가 있는지 궁금해서 문의드립니다.

[2014-11-20. 이준행 답변]

우선 감사합니다. 제가 원칙을 지킨다고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도 원칙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사가 원칙대로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특별한 이유가, 아주 특별한 이유가 없을 때에는 원칙을 지킵니다. 사소한 이유로 지키지 않을 것이면 '원칙'이 아닙니다. "일단 지킨다"를 기본으로 삼기를 권합니다. 이 사례는 원칙을 파괴할 아주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경우입니다. 당연히 원칙대로 갑니다.

진단서는 정확히 써 드리는 것이 원칙입니다. 의학적 견지에서 특히 대장내시경 분야에서 '절제'와 '제거'를 명확히 정의해 놓은 것은 없습니다. 논란은 가능하지만, 관행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용종을 올가미로 잡고 조여서 전기를 통과시켜 자르는 것을 절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게 관행입니다. 저 같으면 관행을 존중하여 아래와 같이 설명할 것 같습니다.

"일반적 의미의 '용종절제술'은 아니었습니다. 용종절제술을 했을 때 "용종을 절제하였다"고 쓰는 것이 의료의 관행입니다. 조직검사를 해 놓고 '절제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환자분 진단서의 '제거'를 '절제'로 변경하는 것은 곤란한 일입니다.

원하시면 다음과 같이 사실관계를 좀 더 명확하게 써 드리겠습니다. Fact를 쓰는 것이 진단서이기 때문입니다. "0.4 cm 대장용종이 발견되어 포셉으로 조직검사를 하였고 이로서 용종이 제거되었음."

진단서를 변경하면 기록을 남겨놓게 되어 있습니다. 처음 작성한 진단서와 수정한 진단서가 모두 의무기록에 남는다는 말씀입니다. "재발급 사유: 환자의 요청 (단어 변경)"으로 사유를 남기게 됩니다. 내용을 변경하여 재발급한 근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록이 없으면 추후 실사에서 모두 문제가 됩니다. 보험금을 받는가 못 받는가는 진단서 문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 fact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보통 진단서에는 정확한 fact만을 간결하게 언급하고 '상세내용 의무기록 참조'라고 쓰는 것이 환자에게 가장 유리합니다.


 8. 보험회사 직원이 이것 저것을 물어보고 양식을 채워달라고 요구합니다.

한 줄 답변: 질문에 답할 필요가 없고 양식을 채워줄 이유가 없습니다. 의무기록을 복사하도록 안내하면 그만입니다.


의사는 환자의 건강정보에 대한 비밀유지 의무가 있습니다. 간혹 보험회사 직원이 "의무기록 복사 및 사본 발급 위임장"을 가지고 와서 질병에 대한 상세 내용을 꼬치꼬치 물어오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 의사는 보험회사 직원으로부터 환자의 건강정보를 설명하고 해석해 주어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어쩌면 설명하고 해석해서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의무기록 복사 및 사본 발급 위임장'을 가지고 오셨으니 의무기록을 복사하고 사본을 발급해 가시기 바랍니다. 보다 상세한 설명이나 진료 과정에 대한 해석을 요구하는 것은 위임장의 위임 범위를 초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설혹 환자가 실수로 지나치게 광범위한 위임을 했더라도, 저는 의사로서 환자의 건강정보 비밀유지 의무를 저버릴 수 없습니다."

간혹 보험회사 직원이 진단서 혹은 소견서 발급을 요구하는 수가 있습니다. 위임장에도 환자가 진단서나 소견서 발급을 부탁한다고 자필로 쓴 경우입니다. 저는 진단서에 진단명만 쓰고 내용에는 "상세내용 의무기록 참조"라고 딱 10 글자만 씁니다. 의무기록의 내용과 소견서의 내용이 조금 달라서 문제가 되는 것 보다는 "상세내용 의무기록 참조"라고 쓰는 것이 환자에게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보험회사 직원이 병원을 찾아와 의사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것은 환자에게 돈을 더 주고 싶기 때문이 아닙니다. 뭔가 핑계를 잡아서 계약자에게 돈을 덜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의사는 최대한 간결하게 응대하는 것이 좋습니다. "상세내용 의무기록 참조"를 잊지 마세요.


 9. 며칠 쉬고 싶다고 진단서에 요양 기간을 써 달라고 합니다.

한 줄 답변: 근거 없는 요양 기간을 공문서(진단서)에 쓰면 안됩니다.


흔히 어디를 다치면 '몇 주 진단이 나왔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 기간은 다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사실 그 기간 동안 쉬라는 말도 아닙니다. 규정에 나와있을 뿐입니다.

내과 질환에는 '요양 기간'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저는 조기위암 내시경치료에 4박 5일 CP (clinical pathway)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퇴원 후에는 (아주 힘든 일을 제외하고는) 일상 생활 복귀를 권합니다. 그런데 어떤 환자가 당분간 직장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쉬고 싶다면서 '2주 정도 자택 안정 가료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진단서에 써 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저는 안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환자에게 "퇴원 후 일상적인 생활로 복귀하시고 당분간 힘든 일은 피하세요"라고 권했는데 그 환자에게만 '2주 정도 자택 안정 가료가 필요하다'고 써 드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현대 의료는 일관성이 생명입니다. 한 환자의 편의를 위하여 전체 의료를 망쳐서야 되겠습니까?

"사정은 이해하겠습니다만, 진단서에 '2주 정도 자택 안정 가료가 필요하다'고 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공문서 위조(?)' 혹은 '가짜 진단서'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대신 (모든 환자에게 드리는) 시술 후 환자 설명서('치료내시경 후 주의사항')를 회사에 제출해 볼 것을 권합니다"라고 친절(?)하게 말씀드렸습니다. 별로 좋아하는 기색이 아니었습니다. 의료는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공적인 계약하에 움직이는 정교한 시스템입니다. 일관성이 생명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