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1일 금요일

진료실 내 녹음. 합법이고 막을 수가 없습니다.

한겨레 신문에 녹음에 대한 상세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관련하여 진료실 내 녹음에 대한 제 나름의 생각입니다.

녹음은 적법한 일입니다.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적응하는 수밖에...


참 어려운 이슈입니다. 환자 본인이나 보호자가 진료실에서 의사와의 대화내용을 녹음하는 분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저는 이런 일까지 있었습니다. ESD를 위하여 입원한 환자(70대 여성)에게 궁금증이 없는지 물었더니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선생님께서 외래에서 설명한 내용을 녹음하여 듣고 또 들었기 때문에 궁금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물론 저는 녹음 사실을 몰랐습니다. 이와 같은 환자가 얼마나 되는지 알 방법도 없습니다. 녹음이 너무 쉽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이면 충분합니다. 의사 얼굴에 들이댈 필요도 없습니다. 녹음 버튼을 누른 후 스마트폰을 호주머니에 넣어도 녹음이 잘 됩니다. 삼성, LG, 애플 스마트폰 모두 녹음기능이 놀랍습니다. 너~~~무 잘 만들었습니다.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모든 환자가 대화 내용을 녹음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진료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병원 감염 예방의 기본 원칙인 universal precaution이 여기에도 적용됩니다. 늘 조심해야 합니다. 늘 바른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환자들은 스스로 잘 치료받기 위하여 녹음하는 것입니다. 무슨 흠을 잡으려는 경우는 드물 것 같습니다. 선의의 녹음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더라도 뭔가 문제가 꼬이면 녹음된 내용으로 트집잡을 일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늘 조심해야 합니다. 의료가 점점 건조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CCTV를 의식해가며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선생님이나, 그런 선생님에 의지해야 하는 아이들이나, 녹음을 의식하며 진료해야 하는 의사나, 그런 의사에게 진료받아야 하는 환자나 모두 피해자입니다. 불쌍한 노릇입니다. '불신의 비용'치고는 너무 가혹하지만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법적 측면은 이렇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녹음 자체가 위법은 아닙니다. 의사에게 동의를 구한 후 녹음하는 것뿐만 아니라, 몰래 녹음하는 것도 위법은 아닙니다. 심지어 증거능력도 있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대화를 나눈 당사자 모두가 대화내용에 대하여 일정부분 지분이 있다고 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의사는 원하지 않는데 환자나 보호자가 녹음을 원하면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요? "죄송합니다만, 진료에 방해될 수 있으니 녹음은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도가 최선일 것 같습니다. 기분이 상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요청해 보는 것이지요. 과거 제 경험으로는 정중히 부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꼭 녹음을 해야겠다고 우기는 환자나 보호자는 없었습니다. 혹시 있더라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다시 한번 요청해 보는 수밖에...

"죄송합니다만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녹음을 자제해 주십시요. 마이크 앞에서는 연예인들조차도 부자연스럽기 마련입니다. 하물며 평범한 의사인 저는 마이크가 무섭습니다. 마이크 앞에서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도무지 정확히 판단하고 있는지 자신감도 사라집니다. 너무 떨려서 말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 진심입니다. 그걸 어떻하겠습니까? 저는 의사입니다. 연예인이 아닙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녹음은 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환자분을 위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제가 환자분을 위하여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렇게 부탁드렸음에도 불구하고 꼭 녹음을 해야겠다고 말씀하시면 저로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저는 대부분의 환자를 표준 module을 이용하여 진료하고 있습니다. 일전에 소개드린 외래설명자료가 그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대형병원에서 좁은 영역의 진료만 담당하고 있기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사실 저는 절름발이 의사입니다. 위암과 위식도역류질환에만 집중하는 이상한 의사입니다. 변비 환자가 오면 벌써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당뇨는 말할 것도 없고..... 조기위암 내시경치료에 집중하는 ultra-selective specialist의 삶이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참고 사는 것이지요. 큰 의료 시스템의 한 부속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Ultra, super, selective, specialist라는 부속도 필요한 것은 사실이니까... 저는 저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하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엄청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specialist로서 뻔한 환자만 진료하고 있는 제게는 녹음이 큰 이슈는 아닙니다. 환자나 보호자나 제 3자가 녹음을 원하면 말리지 않고 있습니다.

요약합니다.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적응하는 수밖에... 모든 환자가 녹음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늘 조심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간혹 의무기록에 녹음 내용을 남겨놓으면 나중에 도움이 됩니다.

 어느 날 외래 문에 이런 안내를 보았습니다. 다 소용없는 일입니다. 막을 수 없습니다.

 어느 날 외래에 이런 안내가 놓인 것을 보았습니다. 다 소용없는 일입니다. 막을 수 없습니다.


 [2019-10-13. 대한개원내과의사회 추계학술대회] 법무법인 나눔 이동길 변호사 강의록 중

1) 몰래 녹음해도 되는가?

  • 불특정 다수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녹음(일괄적인 녹음)은 개인정보보호법의 적용대상이므로 녹음사실을 고지하고 동의를 받아야 함
  • 환자와의 분쟁이 예상되어 향후 증거 수빕을 위한 '개별적'인 녹음은 개인정보보호법의 적용이 없거나 예외사항에 해당
  • 다만, 이 경우에도 다른 사람 사이의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불법. 병원 업무용 전화로 하는 일괄 녹음이 아닌 한(ex. 의사의 휴대전화를 통한 녹음) 대화자 중에 녹음자가 포함되어 있을 경우 아무런 문제가 없음.

2) 진료실내 녹화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 아닌가?

  • 설치된 CCTV를 통해 불특정 다수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당연히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설치,운영되어야 하나, 환자와의 분장이 예상되어 향후 증거 수집을 위한 '개별적'인 녹화는 개인정보보호법의 적용이 없거나 예외 사항에 해당.
  • 환자,가족의 폭행,협박 등에 대한 형사고소 증거 수집, 민사 분쟁에 대비한 증거 수집 등을 위해 개인 휴대전화 등으로 녹화를 할 수 있는 수단을 준비해 두는 것도 바람직.
    다만, 녹화수단이 고정형 CCTV가 아니라 하더라도 불특정 다수에 대한 녹화 시에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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